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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알프스 시로우마다케 여행기
오*주 2016-07-25

 

 

  

 

 

 2016년 7월 16일 북알프스 시로우마다케 여행기

 

 

 

 

2015년 6월. 호도레포츠의 김지열 팀장에게 연락이 왔다. 

 

“형, 메르스 때문에 도야마 공항이 결항되었어. 이번 7월 북알프스 산행은 취소될 것 같아” 

 

아니? 이게 웬 소리이야? 2015년 3월 아오모리 핫코다산 백컨트리 여행에서 사람 가슴을 설레게 만들어 놓은 북알프스 3산 등반이었는데 말이야.

 

 

 

 

 

 

일본의 북알프스는 그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산이었다. 

 

블로그를 열심히 뒤지고 남들의 경험을 간접 체험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6년 7월 15일. 

 

우여곡절 끝에 호도레포츠 한왕식 사장님 선두 가이드. 

 

북알프스 경험이 많은 김지열 팀장이 후미에서 백업을 하기로 하고 총 13명이 동행한 곳. 

 

정확히 표현하면 일본 중부산악국립공원 북알프스 3산. 시로우마다케를 시작으로 샤쿠시다케, 야리가다케이다. 

 

 

 

 

 

그 동안 겨울 시즌에 파우더 스키 여행은 십 수년 동안 수없이 많이 왔던 일본. 

 

나가노는 금년 2월에도 다녀 갔으니 나에게는 그다지 낯 설은 곳이 아니다. 

 

다만, 산악 등반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라 지난 겨울 시즌부터 든든하게 체력을 비축하고 있었다. 

 

그까짓 3000m 급이야! 라고 자신만만해 하면서. 

 

 

그러나, 이러한 자신감은 곧 닥쳐 올 고난의 장송곡이 될 줄이야….

 

 

 

 

  

 

아무튼, 전날의 기대감 때문인지 잠을 설치고 7월 15일 새벽에 5시 반에 기상했다.

 

옆에 누운 마누라도 밤잠을 설쳤는지 눈이 부시시 하다. 

 

09시 20분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약 2시간 만에 도야마 공항에 도착했다. 

 

낯이 익은 분들도 몇 몇이 보인다. 공항의 와아파이를 켰다. 

 

나의 설레임과 기대가 통했던가? 무사히 다녀 오라는 와이프의 톡이 눈에 들어 온다. 

 

멀리 집을 떠나오면 가족이 그립다 했던가. 함께 왔으면 좋았을걸 하면서도 오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오버랩 된다. 

 

이철수 작가의 나뭇잎 편지의 책처럼 그래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다소 늦게 도착한 송영버스를 타고 푹신하게 허리를 기댄다. 편안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일본의 걷고 싶었던 길이었다. 

 

남들이 상상하는 것과 내가 경험할 것들이 같을까? 처음의 자신감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체력 훈련을 많이 했지만 이제 내 나이도 50대 중반의 고개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 

 

호기롭게 시작한 여행의 출발점에서 이게 뭐야? 벌써부터 겁 내는 거야? 

 

다만 내가 그곳에서 어떻게 걷고 있고, 무엇을 볼 것이며, 자연이 만든 거대한 조각들을 제대로 경험이나 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버스는 느릿 느릿하다. 일본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버스 기사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서둘러 봤자 호텔에 도착하고 밥 먹으면 오늘 하루는 끝인 것을. 자다 깨다 반복하다 보니 호텔이다. 하쿠바 호텔. 눈에 익다. 

 

한국에서 나가노 스키 여행을 가면 한국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호텔이지. 반갑다. 

 

호텔 입구의 깔끔한 정원과 갖가지 색깔로 단장한 꽃들이 우리를 반긴다. 비 내리는 바깥의 풍경들이 유화를 몇 번 덧칠한 그림 같다. 

 

비는 그칠 줄 모른다. 저녁 무렵에 한왕식 사장과 김지열 팀장의 의논이 분주하다. 

 

산정의 날씨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부득이하게 코스를 일부 변경해야 한단다. 산행은 안전이 최고다. 

 

시로루마다케 정상에서 샤쿠시다케 정상을 우회하여 야리 온천으로 하산하는 일정이다.

 

 

 

 

 

다음 날 아침도 날씨가 심상치 않다. 창문을 열어보니 부슬비가 안개와 섞여 분위기가 묘하다. 

 

별도의 케리어가 없이 등산 백팩에 물건만 잔득 싣고 왔던 터라, 베낭의 짐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어제 와이너리에서 구입한 와인 한 병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시로우마다케 하쿠바 산장에서 달빛, 별빛을 보면 ‘쨍’하겠다는 기대는 아직 유효하다. 

 

Platypus Platy Preserve (접이식 플라스틱으로 된 와인 병)에 와인을 담는다. 

 

방수 비옷을 꺼내 입고, 약 15분 거리의 쯔가이게 곤돌라 탑승장에 도착했다. 부슬비는 그치지 않는다. 

 

두 번의 곤돌라를 갈아타고서야 산행의 초입에 도착했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 진다. 

 

김지열 팀장이 비옷을 전부 갈아 입도록 소리친다. 짜식 살살 말해도 되는데. ㅋㅋ.  

 

비에 젖은 풀 향기가 싱그럽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화들이 안전한 산행을 기원하듯 길가에서 우리를 축원하고 있다. 

 

울창한 숲들과 나무들이 오히려 아늑하다. 오늘은 시로우마다케 정상까지 바로 올라갈 예정이다. 

 

 

 

 

 

비 내리는 산행은 항상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을 불평으로 여기면 안 된다고 했다. 불편은 우리 주변에 수없이 많이 산재하고 있으므로.  

 

산의 정상은 비구름에 가려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과연 내가 블로그를 통해서 각인된 북알프스의 산들은 어떤 모습일까? 

 

오늘부터 나는 나의 체력을 실험하면서 이틀 간 저 산에 머물 것이다. 

 

나의 일본 체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겨울의 모습과는 다를 상상을 하면서 등산 출발지인 쯔가이게 자연원(해발 1960m) 으로 향하는 일행들의 다채로운 비옷 풍경을 사진에 담는다.  

 

 

 


 

 

 

 

 

 

 

자연원에서 텐구하라(헬리 스키장)까지 가는 길에는 여전히 안개가 자욱하다. 

 

산 위로 성큼 성큼들어 갈수록 녹음이 서서히 물들어 가는 소리가 진하다. 출렁거리는 마음과 삐긋거리는 발 밑의 바위를 위태롭게 걷는다. 

 

고산에서의 등반 요령이 빨리 저 안개의 심부로 들어 가고 싶은 욕망을 자제 시킨다. 

 

본격적인 등산은 와이프와 지리산 천왕봉을 등정하고 8년 만에 처음일 것이다. 그때도 바위 조각들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텐구하라로 가는 길. 급격한 경사와 간간히 걸려있는 등산로 표시. 그리고, 목적을 알고 있는 기대감 넘치는 뇌의 활동들.

 

험준한 지형 속에서 묵묵히 걸어가는 일행들의 입가에는 여전히 즐거운 표정이 넉넉하다. 

 

 

 

  

 

 


 

 

 

 

 

 

 

재촉하지 않음으로 숲의 풍요를 느낀다. 이런 등산이 좋다. 

 

정상만 바라보고 우르르 몰려갔다 찍고 돌아 오는 여행이 아닌 안개와 바람과 숲이 공존하면서 산의 고마움을 느끼면서 여유있게 걸어가는 등산.

 

기실, 우리네 등산은 어떤가? 

 

어느 산을 몇 시간 만에 등산을 했다는 무용담과 산에서 음주에 주변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고 쓰레기가 난무하는 것을 나는 보아왔다. 

 

일본은 확실히 달랐다. 무리를 지어서 등산을 하는 사람도 아주 드물었다. 

 

개인적으로 오는 사람, 두 세 명이 긴 일정을 가지고 초록을 만끽하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일본 스타일의 등반도 좋을 것이다. 

 

비에 젖은 텐구하라를 향해 점점 호흡이 가파질 무렵, 나무 데크가 깔려있는 텐구하라에 도착했다. 물을 한 모금 마신다. 

 

비에 젖는 줄도 모르고 땀으로 배출된 수분을 보충하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탠구하라(해발2200m)는 겨울시즌에 핼리 스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핼기가 이착륙을 하는 곳이라 한다. 

 

주변에는 평평한 습지로 이루어져 있고, 나무 데크로 사람들이 이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도록 조성되어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는 완전한 여름이지만 안개 속의 꽃들은 아직 봄 꽃들이 즐비하다. 형형색색의 꽃들과 눈을 맞춘다. 

 

가련한 야생화이지만 그 생기는 남다르다. 오롯이 순수한 자연과 맑은 공기가 곳곳에서 피어나니 당연하리라. 

 

오늘은 약 8시간의 산행이 계획되어 있기 때문에 약 10분 간의 휴식은 더욱 달콤하다. 

 

 

 

 

시로우마다케를 본격적으로 등산하기 전에 있는 하쿠바 오오이케(해발 2400m)로 향한다. 

 

길이 우리네 산의 길과는 사뭇 다르다. 온통 바위투성이다.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이 다녔을 것도 같은데 돌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꽤 되는 돌들이 바닥에 질펀하게 깔려있고, 

 

때때로 그 돌의 위치가 불안정하여 발을 디디면 발목이 삐끗한 경우가 많다. 

 

13명의 일행이 걷고 있는 이 길은 일본에서도 살아있는 산으로 유명한 북알프스이다. 

 

겨울 많은 적설의 눈들이 계곡으로 쓸려 내려와서 만년설이 된 시로우마 대설계가 있고, 백두산에서만 볼 수 있는 고산 야생화들이 즐비한 곳이다. 

 

운해 속에 갇혀 있지만, 그 위용은 주변의 산세에서 풍겨오는 기운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만년설을 하이크 업으로 등산하고 있다)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한 밧줄을 잡고 상승한다.)

 

 

 

 (오오이게 직전 잠시 숨을 돌리며 안개 속에 돌아 온 길을 바라 본다)

 

 

 

 

 

갑자기 시야가 확 들어오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희미한 꿈을 꾼 듯한 운무 속에서 앞 사람만 따라서 걸었던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부슬 부슬 내리던 비도 없고 파란 하늘에 주변의 녹색이 찬란하게 시야를 사로 잡는다. 비에 젖었던 마음이 무너진다.

 

시골에서만 자라던 처녀가 도시의 화려함에 놀란 표정들이다. 시로우마 오오이케. 시로우마의 큰 연못이라는 뜻이다.  

 

연못 주변에는 지난 겨울 시즌에 내렸던 눈의 자국들이 더욱 선명하다. 

 

지난 시즌에는 기록적인 적은 적설량으로 예년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 위용은 대단하다. 

 

맑게 투영되는 시로우마 오오이케 산장과 멀리 보이는 산의 표정이 포근함 보다는 도도하다는 표현이 더욱 어울린다.  

 

 

 

 

 


 (파란 하늘이 오이이케 직전에 열렸다)

 

 

 


 (오오이케의 푸름. 잠시 생각에 잠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햇살 아래서 호텔에서 지참해 왔던 점심을 서둘러 먹는다. 

 

이제부터는 완만한 경사를 따라서 시로우마다케 정상까지 가는 길이 남아 있다. 앞으로 펼쳐질 놀라운 광경을 상상을 하지 못한 채. 

 

토요일이라고 하지만 이곳 산은 사람이 비교적 한산하다.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멋진 산들이 즐비한 일본의 특성이라고 하기에는 무엇인가 궁금증이 남는다. 

 

일본인의 특성이고 말한다. 우르르 몰려 다니지 않고 개인적으로 조용히 왔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문화(?)적 인 차이점이라고 할까. 

 

확실한 것은 있는 그대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드러내지 않는 숙련된 세련미가 일본인들에게는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다소 불편해 보일지 모르지만 일본인은 이것을 아름다움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운무가 오오에케에서 고랭게야마로 향하는 길에 끼고 걷히길 반복하다가…. 

 

세상에, 나는 이제껏 이런 풍경을 처음 봤다! 본 적이 없으니 그 감동은 충격 그 자체다. 

 

겨울의 스키장에서 멀리 바라보던 풍경이 새털 같이 뽀송 뽀송하다고 한다면, 이건 위대한 자연이 진지한 고민을 하다가 스팩터클하게 등장 시킨 작품으로 밖에 표현을 할 수 없다. 

 

나는 이제까지 일본 산에 대해서 단편적인 사진이었다. 

 

지금은 영화의 스토리를 보는 것처럼 눈 앞에 펼쳐진 동영상에 감동의 물결이 치지 않을 수 없다. 

 

대단하다, 멋있다, 훌륭하다, 아름답다, 웅장하다는 형용사가 결코 부족하지 않다. 

 

북알프스 산은 분명 이런 즐거움과 감동 때문에 찾는 것이구나. 과연 신은 인간 세상을 그냥 던져주신 게 아니다. 

 

우리에게 이모션한 선물을 분명히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지나온 발자취를 생각하면서 이 몇 장의 사진을 천천히 감상 해본다.

 

 

 

 

 

 

 (고랭게야마로 가는 길의 만년설)

 

 

 (고랭게야마로 가는 길은 완만한 능선 길이다. S자로 굽어지는 길에 균형미가 넘친다.)

 

 


 (운무로 쌓여 있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다 드러나는 웅장한 위용)

 

 


 (산에 비하면 인간의 존재가 한없이 미약하다)

 

 

 

 

 


 (한 여름의 운무가 이렇게 환상적인 것은 처음이다)

 

 

 

 

(고랭게야마에서 산고쿠사카이로 가는 길. 멀리 나가이케 작은 호수가 보인다.)

 

 

어떤가? 자연 앞에서 인간은 나약하고 작은 존재이다. 내 몸은 위대한 자에게 몸을 맏기고 발자국으로 그 흔적을 남긴다. 

 

산정에 오르면 오를수록 운해가 학처럼 춤을 춘다. 여름에 이런 멋진 운해를 볼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다. 

 

수평선처럼 길게 늘어선 하늘의 구름을 감동으로 본 적이 있다. 높은 곳에 떠있는 구름이 기상의 변화에 따른 현상이다. 

 

산허리에서 감싸 도는 운해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간직할 행복한 여행의 기억이다. 온 몸으로 새기고 기억한다. 

 

이건 분명 현실이 아니야. 꿈 속 일거야. 배낭의 무게가 아무리 무거워도 감동 앞에서는 그저 어깨의 짐일 뿐이다. 오히려 홀가분하다. 

 

한국을 떠나 오기 전의 많았던 고민들이 이 자연을 통해서 위안을 얻는다. 사람은 자연을 통해서 어른이 된다고 했다. 

 

그것은 나이가 주는 경험이 아니라 어린 사람도 터득할 수 있는 깨달음이다. 

 

달마선사가 말한 ‘뜰 앞의 전나무’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느낀 바 대로 보는 것이라 했다. 이학적인 원리 따위는 필요 없다. 

 

이곳에서 자연 현상에 대한 교육이 무엇 필요할 것인가.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자연에 나를 동화해서 느끼면그만이다. 

 

이것이 진정한 선(禪)이다.  행복이란? 세상과 단절하고 잠시 나를 내려 놓는 것. 

 

핸드폰, 컴퓨터가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는 이 현실에 나를 맞기는 멋진 시간이 지금 존재하고 있다. 

 

고산의 바람과 함께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저 나무, 풀들을 보아라. 

 

능선에 조금만 몸을 지탱할 수 있다면 자리를 잡고 피어 있는 담자리꽃나무, 분홍꼬리풀, 이질풀, 두메양귀비, 매화바람꽃, 돌앵초, 용담꽃, 양지꽃, 초롱꽃, 범의귀…  

 

수 많은 식물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흔적을 남기며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고 있잖아. 이렇게 우리도 순리대로 살아가면 되는 거지. 

 

 

 


 
(범위귀)

 

 


 
(둥근이질풀)

 

 


 
(담자리꽃나무)

 

 

 

 

시로우마다케 정상의 마지막 피치는 험하다. 언제 위에서 돌이 굴러 내려올지 모르는 가파른 구간의 연속이다. 

 

동화 속 끝은 항상 이렇게 비극적인가? 산림한계선을 넘어서자 바람도 더욱 거세다. 

 

일행의 촬영을 자처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고산에서 촬영한 탓에 다리가 저려온다. 

 

15년 전 다친 왼쪽 발목 때문인지 왼 쪽 정강이 부근이 자꾸만 당긴다. 몽롱한 정신이 뭔가에 홀린 듯 졸음도 쏟아진다. 

 

비현실적인 느낌의 연속이다. 몸도 무기력해진다. 땀을 너무 흘려서 정신이 혼미한 것도 아니고….  

 

이 때부터 고산증을 경험하게 된다. 조금만 서둘러 행동을 하면 호흡이 더욱 가팔라진다. 다리는 더욱 욱신거리고 마지막 호흡을 다듬을 시간. 

 

오후 5시 경. 등반을 시작한지 8시간 만에 도착한 시로우마다케 정상. 이건 뭐야? 황량함, 쓸쓸함이 엄습해온다. 

 

지리산 천왕봉도 그렇거니와 이곳도 정상은 돌무더기다. 조금만 아래로 내려가도 풀들이 군데 군데 자라고 있는데 이곳을 그냥 바위뿐이다. 

 

정상은 다소 초라했지만 존엄을 가지고 있다. 바닥을 구르는 돌들이 많아도 올라 온 자를 대우해준다. 그런 것이 시로우마다케 정상의 존엄이었다. 

 

사람들의 표정도 덩달아 밝다. 

 

 

 

 


  (시로우마다케 정상에서 한 컷)

 

 

 

이제 방향을 틀어 하산을 해야 한다. 약 15분만 가면 하쿠바 산장이다. 일본의 고산에서는 오후 4시까지 입실이 예의다. 

 

너덜 바위 길을 내려서 가는 건너 편의 가렸던 풍경이 갑자기 솟아오른다. 타테야마의 거산이 나타났다. 

 

검푸른 색의 창 끝처럼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가 츠루기다케라고 한다. 한글로 검악(劍岳). 칼처럼 날카로운 봉우리라 해서 그렇게 부른다. 

 

일본 대학산악연맹에서 매년 겨울이면 저 산을 등정하는데 츠루기다케를 가지 않고 동계 훈련을 했다고 말하면 안되는 불문률의 산이다. 

 

싱싱한 20대 청년 같은 근육질이 멀리에서 보아도 대단하다. 

 

 


 (시로우마다케 정상에서 바라 본 하쿠바 산장과 건너 편의 다테야마)

 

 


 
(운무가 왔다 갔다 반복하고 있다)

 

 

 

 

하쿠바 산장은 일본에서 최대 8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산장이다. 

 

하루에도 기상 변화가 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쉬었다 가는 곳이다. 7월이지만 바람은 차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간지럽다. 

 

웅장한 북알프스의 숨소리를 간직하기 위해서 사진으로 담기에 여념이 없다. 

 

그 위용에 눌려 아름답다는 표현을 하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이 길들을 어떻게 하면 잘 보관 할까. 

 

보석 같은 이 길과 꽃, 바람과 구름을 고이 고이 접어서 주머니에 넣어 갈 수 있다면 전부에게 보여주고 싶다.

 

 

 

 


 
(하쿠바 산장 앞에 보이는 샤쿠시다케)

 

 


 (석양의 샤쿠시다케. 멀리 야생적 매력의 츠루기다케가 보인다.)